성경 기초 공부

(앞에서 이어 짐)
하나님은 아담의 옆구리에서 여자를 꺼내어 아담의 옆에 두셨으니 여자는 ‘옆’의 존재, 즉 함께 하는 존재다. 이것이 배필(helper)의 의미이다. 옆에 있으면서 하나인 방식, 이것이 부부의 방식이다. 옆에 있는 아내 안에 있는 것 중에 남편의 것이 아닌 것이 없다. 여자의 모든 것은 남자에게서 나왔고 남자는 자기 옆에 있는 아내를 보며 자기를 본다.
잠시 신약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 오자.
마지막 때에 예수께서 오신다. 오셔서 하신 일은 십자가를 지신 일뿐이다. 예수와 관련된 모든 일의 결국은 십자가에 있다.
(부활은 예수의 일이 아니라 성부의 일이다. 부활 주제는 창조 주제와 뗄 수 없는 것이지만 특히 순종 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회를 봐서 따로 다루자.)
십자가는 어머니가 출산하는 현장이기도 하고, 아버지가 자기 허리에서 자기 자손을 낳는 현장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남편이 자기 옆구리에서 아내를 내놓는 현장이다. 십자가에서, 더 정확하게는 예수의 옆구리에서 아내가 나온다.
사흘동안 잠들었다가 깨어나신 예수께 하나님께서 아내인 교회를 데려오신다. 교회는 예수의 부활과 함께 생명을 얻는다. 예수에게서 교회가 나왔으니 교회는 예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 하와의 모든 것 중에 아담의 것이 아닌 것이 없었던 것처럼 교회의 모든 것 중에 주의 것이 아닌 것이 없다. 주(남편)께서 교회(아내)를 .자.기.몸.처.럼. 사랑하시는 것은 그때문이다.
물론 이 ‘남편의 아내 맞이’는 으로 사도행전에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계시록까지 이어진다. 계시록 21장은 다시 창세기 언어를 사용하여 시작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만들어지고(1), 만물이 새롭게 되었을 때(5) 어린 양의 신부가 등장하는데 보니 새예루살렘이다. 새 예루살렘은 항상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1, 10).
사람은 하늘에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 3:5) (‘예수가 몸소 하나님 나라이다’ 하는 것은 뒤에 따로 다루자).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나지 않으면 남편의 아내가 아니다. 남편의 아내가 아니면 남편을 볼 수 없다. 교회는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로부터 난 예수의 아내다. 사람에게는 예수 외에 만날 하늘이 없다. 예수로부터 나는 것이 하늘로부터 나는 것이다. 친히 하늘이시면서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로부터 난 자마다 예수를 만난다.
육에서 나면 육이지만 영에서 나면 영이요 하늘에서 나면 하늘이다. 이것이 새 예루살렘이다. 새 예루살렘은, 공간 언어로 표현된 교회(아내)인데, 하늘을 나누어 받은 하늘 공간이다. 하늘에서 나왔으니 하늘에 속해 있다. 이 새 예루살렘을 계시록의 저자는 새 이스라엘이라 부른다. 이제 아내를 인격의 공동체로 표현하는 것이다.
계시록 21장의 이어지는 내용들은 그 아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당연히, 천국이 물질적으로 풍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교회가 나왔으니 교회는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이야기다. 물론 끝의 끝이 오기까지 교회에게는 가야할 길이 남아 있다. 세상의 끝날에 십자가에서 시작된 신혼 잔치가 ‘진짜 마지막’으로 시작되는 때까지는 길지만 짦은 시간이 주어져 있다.
시간 속의 존재는 시간을 보내야 시간 뒤의 사건이 온다. 교회에도 교회에 합당한 ‘시간 보내기’가 있다. 이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을 교회의 인내라고 하고, 그 인내를 잘 하는 것을 교회의 승리라고 하고, 신랑만이 소망이기에 – 신랑만이 볼 만하기에 – 눈을 떼지 않는 것 역시 소망이라고 하고, 그 시간 속에 주어진 교회의 언어를 기도라 하고, 그 신랑만이 신랑이라 믿는 것을 교회의 일/행위라고 부른다(계 22:10-12, 마 7:21 ff. 요 6:29).
오 주 예수여, 당신이 교회의 유일한 행위입니다.
(계속)

스승의 날 잡생각

어린이날:
어린이들이 설겆이 하고 빨래하고 밥하는 날. 왜냐하면, 다른 날은 대체로 어른들이 다 하니까 이날이라도 하란 말이지.
그날 하루만이라도 어린이를 존중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자는 날이라는 의견에는 물론 나는 반대. 다른 날은 홀대해도 괜찮다는 뜻으로 읽혀.
 
어버이날 :
이런 날이 있다는게 웃겨, 슬퍼.
 
오늘, 스승의 날:
스승의 날이란 것도 웃기고 슬픈 날이야. 그래도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니까 좀 더 이야기한다면, 이날은,
가르치는 일을 하는 이들마다 크게 부끄러워하게 되는 날. 그래서 어디 숨고 싶은 날. 어디 기도원 가서 조용히 무릎꿇고 있다가 오면 좋을 날. 솔직히 말하자면, 가슴을 쥐어뜯어야 할 날.
…………………………………..
어느날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다.
“선생님, 월급이 없어도 이 일을 하실 건가요?”
나의 질문은 지금도 그대로다.
그리고, 목사, 의사, 정치가, 등도 이 질문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청소년들아.
혹시 부모님이, “교대 가라. 선생하면 직장도 안정적이고, 월급도 적지 않고, 방학도 있고, …. ” 하고 말씀하신다면, 나는 그들이 부모의 탈을 쓴 사탄이라고 믿는다. 더 물들기 전에 빨리 가출해라. 물론 그냥 그 집에 지내면서 말 안 듣는 방법도 있다. 선택은 알아서 하고.
……………………………………
학생의 날도 있어. 그날은 데모하는 날이야. 요즘 학생들은 데모를 잊어버렸어. 대신 연예인 이름과 시험치는 날을 기억하지. 그러고 보니, 학생의 날도 슬픈 날이 되었네. 잊혀졌으니까.

예수냐 바울이냐고?

어른이라고 다 잘 아는 건 아니다.
오히려, 뒤틀린 채로 견고하게 굳어있을 가능성이 많다.
아래글은 그 좋은 예로 거의 대부분 헛소리다.
그의 책 제목부터 그것을 보여 준다.
▒▒ ▒▒▒▒▒▒▒▒!! (이건 내가 하는 욕인데 모자이크 처리)

빗나간 바울 사상, 예수 정신 훼손시키고 한국교회 병들게 해(문동환 목사 인터뷰, 경향신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