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기타
순천만 새 발자국
허신(許愼)은 자신의 책 설문해자(說文解字) 서문에서 ‘황제의 사관 창힐은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그 모양이들 서로 다른 것을 알아서 처음으로 서계를 만들었다(黃帝史官倉頡 見鳥獸蹄迒之跡 知分理之可相別異也 初造書契)’고 했길래 눈에 힘 좀 주고 들여다 봤건만 …![]() |
나머지 정리
과제: 令有物不知其數 四四數之賸三 五五數之賸三 七七數之賸二 問物幾何
나머지정리 문제다. 수학문제를 보니 반갑지?
나도 학교 다닐 때 수학을 제일 좋아했어(딸은 이렇게 이야기하면 날 때릴려고 해 ;-).
대학 이산수학에서는 다른 풀이도 가능하겠지만 중등교육 정수론 범위내에서 풀어보자.
요즘 초등수학 경시대회에도 이 정도 이상의 문제가 나오더라.
일단 해석 먼저.
令有物不知其數 가령 그 수를 알 수 없는 물건이 있다고 하자[令: 가령/이를테면 령, 數: 수 수(명사)].
四四數之賸三 넷씩 넷씩 헤아려가면 3개가 남고[賸: 남을 잉, 數: 셀 수(동사)]
五五數之賸三 …
七七數之賸二 …
問物幾何 묻노니 그 물건이 몇 개인가?
이하 풀이.
N=4a+3 (1)
N=5b+3 (2)
N=7c+2 (3)
4a+3=5b+3 //(1)과 (2)에서.
4a=5b
a=5/4b=b+b/4 //a가 정수이므로 b/4도 정수. 그래서
b=4m (4) //즉, b는 또 다른 정수 m의 배수.
5b+3=7c+2 //(2)와(3)에서
c를 구하기 위해 이항해서 정리하고 (4)를 대입하면
7c=5b+1=20m+1=21m-m+1=21m-(m-1)
c=3m-(m-1)/7 (5) //c가 정수이므로 (m-1)/7도 정수. 그러므로
m=7n+1 (6) //여기서 n은 또 다른 정수.
(5)에 (6)을 대입하면
c=21n+3-(7n+1-1)/7=20n+3 (7)
(7)을 (3)에 대입하면
N=7(20n+3)+2=140n+23
N=23, 163, 303, ……
최소의 수를 요구한 경우는 23,
그렇지 않으면 23, 163, 303 ……
쉽지?
고려사 3권 목종(원년-5년)
| 穆宗. 목종.穆宗宣讓大王 諱誦 字孝伸 景宗長子 母曰獻哀太后皇甫氏 景宗五年 庚辰 五月 壬戌生 成宗卽位養于宮中 九年 六月 封開寧君 十六年 十月 戊午 受內禪卽位. 목종 선양대왕(목종의 시호)의 이름은 송誦이고 자는 효신인데 경종의 장자이다. 모는 헌애태후 황보씨다. 경종 5년 경진년 5월 임술일에 났으며 성종(경종의 사촌 동생)이 왕위에 올라 그를 궁중에서 길렀고 (아마 성종) 9년 6월에 개령군으로 책봉하였다. 성종 16년 10월 무오일에 내선(內禪 : 왕위등을 부자 형제 등 내부에 생전에 잇는 것)을 받아 왕위에 올랐다.十一月 遣閤門使王同穎如契丹告嗣位. 11월에 합문사 왕동영을 거란에 보내 왕위를 받은 것을 알렸다. 十二月 壬寅 御威鳳樓赦 褒孝順 洗痕累 救疾病 文武官及僧徒加一級 國內神祇皆加勳號 仍賜內外大酺一日 尊母皇甫氏爲王太后. 是月 契丹遣千牛衛大將軍耶律迪烈來賀千秋節 王迎命告于成宗柩前. 元年 春正月 賜周仁傑等及第. 三月 賜姜周載等及第. 夏四月 壬子 謁太廟祔成宗以侍中崔承老大師崔亮配享赦. 以王生日爲長寧節. 是月 契丹以前王薨勑還納幣之物. 五月 戊午 敎有司曰 太祖及皇考忌齋各限五日焚修輟朝一日惠定光戴成忌齋各限一日以爲常式. 秋七月 庚午 太保內史令徐熙卒. 癸未 改西京爲鎬京 二年 秋七月 作眞觀寺于城南爲太后願刹. 冬十月 幸鎬京齋祭赦存問耆老賜物 兩京諸鎭軍年八十以上有職者增級 無職者除陪戎校尉 扈駕八品以下員吏軍人賜物有差. 日本國人道要彌刀等二十戶來投 處之利川郡爲編戶. 遣吏部侍郞朱仁紹如宋 帝特召見 仁紹自陳國人思慕華風爲契丹劫制之狀 帝賜詔齎還. 三年 冬十月 創崇敎寺爲願刹. 是歲 賜宋翃等及第. 四年 冬十一月 幸中原府 巡省風俗 宴群臣赦 扈從官及所歷州郡官 加一階賜物有差. 五年 夏四月 壬申 親享太廟 加上先王先后徽號. 五月 敎曰 秋八月 甲子 賜朴元徽等及第 —— * 대충 옮긴 것이니 전공학생들은 참고할 때 조심하기 바람. |
慕夏堂 金忠善의 家訓
명절이다. 온갖 좋은 것들이 연상되고 언급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예외도 있다. 이를테면 이산 가족이나 나그네들이다. 그리고 자식도 없는 홀아비와 과부, 그리고 고아들이다. 이들에겐 명절이 오히려 고통과 애달픔과 눈물의 명절이다. 주차장이 되어버린 고속도로를 보며 ‘몇 시간 아니라 몇 십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갈 수 있는 어딘가가 있기만 하다면’ 할 따름이다. 나도 참 웃긴 것이 어릴 적 가출을 해서 공돌이 생활로 전전하며 연 중 몇 차례 나름대로 애잔하게 보낸 적이 있다. 젊은 날의 치기로 집나와 있던 내게도 명절은 쓸쓸했는데, 양심이나 운명이나 혹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함께 휘둘려 명절이 고통스럽게 된 이들의 심정이야 한 다리 건너 있는 내가 어디 ‘이해한다’고 입이나 뗄 수 있으랴.![]() 그래, 영화 ‘파이란’에서 파이란은 얼마나 슬픈 그리고 하얗고 여린 난초였던지. 세탁소는 따뜻했지만 그 흰 난초는 타향에서 스러졌다더라. 옷을 세탁하며 꽃같잖은 인생도 세탁하며 그러다가 자기도 지워졌겠지. 모든 이방인은 타향에서 그렇게 흰 난초가 되고 모든 타향은 이방인에게 아픔과 슬픔과 죽음이 되는 것인가보다. 하긴 이방인만 이방인이 되는 것이랴. 그것이 어떤 세계든, 모든 약하고 가난한 것들은 자기 입으로 ‘국가 대표 호구’라고 말하는 강재처럼 3류 인생을 살다가 ‘흘러온 사랑 한 조각’도 손끝에 대 보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게 이방인이지. 원작자가 일본인이라고? 흥, 그게 어쨌단 말인가. 노래나 하나 듣자.
아,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은 슬픈 일이다. 동성애자들이 그렇고, 소수인이 그렇고, 힘있는 무례함 앞에 선 약한 자가 다 그렇겠다. 노래가 내게는 어찌 이리 슬프게만 들리는지. Sting은 하소를 하는 건지, 타이르는 건지, 꾸짖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혹은 그 모두인지도 모르고. 근데 이 글의 제목이 왜 저 모양이냐고? 옛날 이야기도 하나 할 거다.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까지는 아니고, 선조 25년 임진년, 가토 기요마사가 내세운 일본 선봉장 하나가 바다를 건너 이 땅을 밟자마자 귀순한다. 그는 한 편으로는 조선군에 조총 제조법을 전수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일본군의 작전을 조선군에게 알려주며 오히려 조선군의 선봉에 선다. 전공을 인정받은 그는 선조로부터 성과 이름뿐 아니라 벼슬까지 받는다. 그렇게 조선에서의 삶을 시작한 사람이 바로 사성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된 김충선(金忠善, 沙也可 (さやか) 1571-1642)이다. 이제 그는 가고 그의 후손과 그의 문집 모하당집 慕夏堂集만 남았다. 문집의 후손 위작설은 차치하고, 문집을 뒤적이노라면 둔감한 나같은 사람에게도 그의 노심초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땅의 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 혹독하게 자신을 채찍질하고 몇 배는 더 조심스럽다. 그는 자신을 낮추기를 언제까지나 멈추지 않고, 우국충정은 가득하다 못해 넘친다. 자손들을 위해서는 충효와 검약을 신신당부한다. 그것뿐이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 나는 바로 이 즈음에서 그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헤아리며 슬픔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글 어디서도 두고 온 섬 나라의 자기 가족 이야기를 남기지 않는다. 그립다는 말도 외롭다는 말도 그런 낌새도 내비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어찌 어디 외롭지 않은 구석이 있었으랴. 어찌 아무 그리움 없었으랴. 홀로 눕고 잠들고 할 때마다 어찌 생각과 기억이 그를 송곳처럼 찌르지 않은 때가 있었으랴. 나는 그가 매일 밤 울었을 것이라고 감히 장담한다. 슬픔과 외로움과 고통에도 종류와 정도가 당연히 있다고 해야 할 텐데, 나는 한 마디도 외롭다고 하지 않는 그의 말이 참 슬프고 가장 아프다. 괜히 짐작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짐작만 하는 나도 그런데 그는 어땠으랴. 그의 글의 한 예로 아래에 그가 자신의 후손들을 위해 남긴 가훈을 한글로 옮겨본다. 모쪼록 이 어쭙잖은 글줄들이 그의 후손들에게 큰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역이 있겠지만 발견되면 나중에 슬쩍 고치기로 하고 대강 옮긴 것이니 전공 학생들은 참고할 때 조심하기 삼가 바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