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음악

[Just A Freckle Faced Soldier]

오늘 하기로 마음 먹고 있었던 일을 갑자기 하지 않을 수 있게 되어 푸근한 마음이 되었던 차에 어제밤 혼자 영화를 한 편 보았습니다. 영화 제목은 [Taking Chance]. 죽음과 삶의 경계를 죽 따라가는 진행은 소란스럽지 않아 즐거웠지만, 전체적으로는 미국 영웅주의의 부산물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는 영화이고 나아가서는 ‘모병 영화’의 역할까지도 욕심을 내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 거는 건,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노래 하나 같이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전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때 떠오른 노래는, 우리나라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소년병]으로 알려진, Colleen Lovett의 [Just A Freckle Faced Soldier]였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노래인가요? 전쟁이 언제 그칠지는 다 아시지요? 뜬금없지요?

If I Stand – Rich Mullins

There’s more that rises in the morning
Than the sun
And more that shines in the night
Than just the moon
It’s more than just this fire here
That keeps me warm
In a shelter that is larger
Than this room
아침엔 해 그 이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어
밤에는 달 그 이상으로
비추이는 것이 있어
난로가 아니라도
더 따뜻한 것이 있어
집이 아니라도
더 크게 쉴 수 있는 곳이 있어
[And there's a loyalty that's deeper
Than mere sentiments
And a music higher than the songs
That I can sing
The stuff of Earth competes
For the allegiance
I owe only to the Giver
Of all good things
[단순한 감정보다
더 깊은 성실이 있어
부를 수 있는 노래보다
더 높은 노래가 있어
땅에 속한 모든 것이
나를 두고 다투지만
난 오직 모든 선한 것 주시는
하나님의 것
So if I stand let me stand on the promise
That you will pull me through
And if I can't, let me fall on the grace
That first brought me to You
And if I sing let me sing for the joy
That has born in me these songs
And if I weep let it be as a man
Who is longing for his home]
서야 한다면 약속 위에 서게 하소서
약속만이 날 일으키리니
혹 아니라도 은혜 위로 넘어지게 하소서
처음에 당신께로 이끈 그 은혜 위로
노래해야 한다면 즐거움을 노래하게 하소서
내 속에 이 노래들을 일으킨 그 기쁨으로
울어야 한다면 그렇게 울게 하소서
본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There’s more that dances on the prairies
Than the wind
More that pulses in the ocean
Than the tide
There’s a love that is fiercer
Than the love between friends
More gentle than a mother’s
When her baby’s at her side
초원에 이는 바람보다
더욱 춤추는 것이 있어
바다의 물결보다
더욱 뛰노는 것이 있어
친구의 사랑보다
더욱 강렬한 사랑이 있어
어머니의 가슴보다
더욱 부드러운 것이 있어
[Refrain]
And if I weep let it be as a man
Who is longing for his home

trans. by Pascal Lee

CLARA C – “Hallelujah”

80′s 중반에 Leonard Cohen이 발표하고 그후에 많은 가수들이 다시 부르더니 (쉬렉에도 삽입되었었고 9/11 기념 음악으로도 사용되었다), 이제 클라라의 노래는 또 다른 맛이다. 그나저나, 다윗과 밧세바, 삼손과 데릴라, 나와 너, 옛날과 지금, 거기와 여기를 넘나드는 진행으로 처음 들었을 때부터 듣기 쉽지 않았던 내용을 누가 깔끔하게 정리해서 이야기해 줄이가 없을까?
그리고 미리 말해두는데, 이 노래는 ccm도 hymnal도 아니니 뭐 신앙적 내용과 음조를 크게 기대하지는 마시라.

염려와 유혹

matt 13:22 mark 4:18-19 luke 8:14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e
s
v
As for what was sown among thorns,
this is the one who hears the word,
but the cares of the world
and the deceitfulness of riches
choke the word,
and it proves unfruitful.
And others are the ones sown among thorns.
They are those who hear the word,
but the cares of the world
and the deceitfulness of riches
and the desires for other things
enter in and choke the word,
and it proves unfruitful.
And as for what fell among the thorns,
they are those who hear,
but as they go on their way they are choked
by the cares
and riches
and pleasures of life,
and their fruit does not mature.
G
N
T
ὁ δὲ εἰς τὰς ἀκάνθας σπαρείς,
οὗτός ἐστιν ὁ τὸν λόγον ἀκούων,
καὶ ἡ μέριμνα τοῦ αἰῶνος
καὶ ἡ ἀπάτη τοῦ πλούτου
συμπνίγει τὸν λόγον
καὶ ἄκαρπος γίνεται.
καὶ ἄλλοι εἰσὶν οἱ εἰς τὰς ἀκάνθας σπειρόμενοι·
οὗτοί εἰσιν οἱ τὸν λόγον ἀκούσαντες,
καὶ αἱ μέριμναι τοῦ αἰῶνος
καὶ ἡ ἀπάτη τοῦ πλούτου
καὶ αἱ περὶ τὰ λοιπὰ ἐπιθυμίαι εἰσπορευόμεναι
συμπνίγουσιν τὸν λόγον
καὶ ἄκαρπος γίνεται.
τὸ δὲ εἰς τὰς ἀκάνθας πεσόν,
οὗτοί εἰσιν οἱ ἀκούσαντες,
καὶ ὑπὸ μεριμνῶν
καὶ πλούτου
καὶ ἡδονῶν τοῦ βίου πορευόμενοι
συμπνίγονται
καὶ οὐ τελεσφοροῦσιν.
1.
[세상 τοῦ αἰῶνος the world]의 염려(the worry of the world -NASB)는 [이 세상]의 염려다. KJV는 아예 [the care of this world]로 옮겼다. 이는 현재의 삶을 걱정하고 돌보는 것이다.

누가복음은 같은 내용에서 원문 자체에 마태복음의 [세상 τοῦ αἰῶνος] 대신에 [(이)생] 즉 [생명 τοῦ βίου the life] 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마태복음의 [세상]이 [이 땅에 속한 삶/생계/생명]이라는 뜻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눅 8:14).

2.
즉, [세상의 염려]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생활의 염려요, 곧 생계의 염려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마 6:24)이 [세상의 염려]다. 그러므로/그리고, 그

3.
이 세상의 염려는, 이어지는 [재리의 유혹 ἡ ἀπάτη τοῦ πλούτου the deceitfulness of riches]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거나 직장에서 쫒겨나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건강을 잃거나 하여 당하는 또는 당할 생활/생계의 어려움과 생명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 이 세상의 유일한 방도는 돈(의 능력을 입는 것)이라는 생각에 먹히는 것이다. [유혹]이라고 번역된 [ἡ ἀπάτη he apate]의 본뜻은 [속이는 것 the deceitfulness]이다. 재리는, ‘재리를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속인다. 이 거짓말이 재리의 유혹이다.

4.
그러나 천국(하나님 나라)은 하나님이 그 생명을 붙잡고 계시는 나라이다. 하나님이 친히 땅을 마련하시고, 친히 씨를 뿌리시고, 친히 씨가 되셔서 이루는 나라, 즉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 생명의 씨가 그 안에서 발아한 사람마다 생명의 가족이 된다.

속지 말라. 속지 말라.

5.
G.F. Händel의 Neun Deutsche Arien(9개의 독일 아리아 HWV202-210) 중에서
첫곡 ‘Künftger Zeiten eitler Kummer’(HWV 202)와
넷째 곡 ‘Süße Stille, sanfte Quelle’(HWV 205) 감상.

Künft’ger Zeiten eitler Kummer, HWV 202, Dorothea Röschmann
Künft’ger Zeiten eitler Kummer
Stört nicht unsern sanften Schlummer,
Ehrgeiz hat uns nie besiegt.Mit dem unbesorgten Leben,
Das der Schöpfer uns gegeben,
Sind wir ruhig und vergnügt.
Vain concerns for the future
Do not disturb our gentle slumber,
Ambition has never vanquished us.With the carefree life
The Creator has given us
We are content and satisfied.
Süße Stille, sanfte Quelle, HWV 205, Carolyn Sampson
Süße Stille, sanfte Quelle
Ruhiger Gelassenheit!
Selbst die Seele wird erfreut,Wenn ich mir nach dieser Zeit
Arbeitsamer Eitelkeit
Jene Ruh’ vor Augen stelle,
Die uns ewig ist bereit.
Sweet quiet, gentle source
Of peaceful serenity!
Even my soul rejoicesWhen I, after all this time
Of futile work,
Contemplate the peace
That awaits us for eternity.
연륜이 묻어나는 Emma Kirkby(EMI 2007)와 Dorothea Röschmann(Harmonia Mundi Fr. 2000)은 구관이 명관이다 싶기는 한데 최근 다시 녹음한 Emma Kirkby는 조금 힘들어 보인다. Nuria Rial(DHM 2008)과 Carolyn Sampson(hyperion UK 2007)은 젊은 만큼 상큼한데 Sampson에게 더 끌린다. 영성이 녹아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그녀의 개인사를 몰라서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아마 헨델 전문가라 할 만한 역량때문이리라. 온 라인에서 들을 수 있는 도희선의 것은 녹음이 좋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에 아쉽다. Monika Mauch(Carus 2008)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아래는 필요한 분을 위한 악보이다. 둘 중의 하나를 받으면 된다.
IMSLP37863-PMLP83645-H__ndel_Neun_deutsche_Arien_Score.pdf (4.81MB)
http://icking-music-archive.org/scores/haendel/DeuAr/NineGermanArias_Score.pdf (837KB)

새야 새야 파랑새야

나는 이 노래를 국민학교 입학하기도 전에, 대구의, 사람들이 머리도 감고 빨래도 하던, 신천 방둑을 걸으면서 선친으로부터 배웠다. 그때 아버지와 내가 손을 잡고 걸었는지 그냥 나란히 걸었는지 모르겠다. 이노래를 가르쳐 주시면서 무슨 말씀도 해 주시긴 했는데, 아버지 어릴적 이야기였던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애환어린 이야기 같기도 하고 그랬는데 가물가물하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아버지가 전봉준과 동학 농민들의 이야기를 해 주셨을지 모르지만 이 노래와 그 사건이 함께 붙어 있다는 것은 아마 훨씬 나중에 책 등을 통해 더 상세하게 접했으리라. 하지만 내게는, 사건은 좀 접혀 있고, 주로 이 노래만 남아 있다(어떤 분들은 어찌 그런 무책임한 노래 이해를 가질 수 있느냐고 화를 내실지 모르겠다). 어쨌든, 어떻게 이 가락 이 노래만이 남아 지금까지 내 속에서 맴도는지, 아마,

노래라는 것이 사건을 넘어 사람 속으로 들어오는, 노래의 태생적 능력 때문이라 생각한다. 좀 생뚱맞지만, 하인리히 뵐의 몽환적인 글 –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고 내게는 그렇다는 말이다 – 처럼, 또는 강과 강둑을 아울러 자욱하던 강 안개나, 늘 속에서 차오르는 어떤 그리움처럼 그렇게, 이 노래는 ‘민족적인 나’의 정서 한가운데를 구성하고 있다.

[감상]
내가 생각할 때 이 노래는 재해석된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그 더 원색적인 다른 버전의 이 노래는 다들 익숙하시리라 하는 짐작에, 여기서는 조금 재해석된 것으로 소개한다. 주변의 소리들이 좀 지나치게 넘나드는 점이 아쉬운데 신예원의 보컬과 색소폰의 느낌으로 만족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