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로마서

로마서 읽기 II

12장
1. (예수의 제사로, 그 제사 덕택에, 그 제물이 되신 예수를 믿음으로 의에 이르렀으니: 1-11장) 믿는 사람도 연합하여 드려진 – 죽은 – 자로 사는 것이 합당하다. 이것이 우리의 예배이다(1).
마음을 주께로 돌려 먹고 – 믿음으로 – 변화를 받은(수동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사는 것이다(2).

2. (그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한 몸이며 서로 지체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3-8). (그것은 곧 서로 사랑함인데) 사랑에는 사랑만 있어야 하니 사랑 외에 다른 것이 붙어 있으면 그것이 거짓이다(9). 마음을 낮추고 모든 사람 형제와 원수를 사랑하고, 주를 사랑하라(10-18).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라. 원수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원수 갚는 방법이다(19-21).

13장
3. (신자는 신국 시민이긴 하지만 이 땅에서 사는 신국 백성이다. 이 땅에서 영적 제사를 드리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땅의 정부에 복종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이다(1-2). 또한, 그들은/그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 – 그들 자신이 알든 모르든 – 믿는 자의 유익을 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야 할 바를 하라. (3-7).

4. 모든 것은 사랑으로 수렴된다(8-10). 마지막 때가 깊어가고 있으니(11-12a), 더욱 사랑으로 행해야 할 뿐이다(12b-14).

14장
5. (너희가 서로 사랑한다면) 약한 자를 용납하라/사랑하라(1-3a).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기/사랑하셨기 때문이다(3b-4, cf.15b).

6. 안식일이나 음식 문제도 그와 같다. 주의 것이 되어 주를 위해 사는 자라면 삶의 양식이 달라도 우리는 모두 하나이니 우리는 다른 믿는 이를 판단하지 않는다(5-10a).

7. 하나님의 나라의 참된 성격인 의와 희락과 화평으로써(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 것이 옳고 합당하며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10b-23).

15장
8.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배려해야할 책임이(=마땅히) 있는데 그렇게 이웃을 세우는 것이 선이다(1-2).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렇게 하셨다.(3).

9. 우리는 성경에서 반드시 배울 수 있어야 하고(4a), 그 배움의 결국은 인내와 위로이다(4b). [원문에서 인내와 위로는 등위접속사로 연결되어 성경에 같이 걸려 있다.]

10. [기원] (성경이 인내와 위로의 성경이니 하나님도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다.) 그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께서 (인내와 위로의 실체로서) 예수의 뜻을 따르게 – 예수의 교훈을 배우게 – 하신다. 그것은 서로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이다(5). 그래야만 한 마음과 한 입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6).

11.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받아들여야 한다(7).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으로 와서 섬긴 것은 구약의 언약을 성취함 – 유대인을 위함 – 과 이방인들도 돌아옴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8-12). 거기에 기쁨과 평강과 소망이 있다(13).

12. 로마교회들은 선함과 지식으로 능히 서로를 권할 수 있지만(14) 다시 상기시키려고 이렇게 쓴 것은 내가 받은 은혜 때문인데(15), 그 은혜는 내가 이방인은 맡은 것이다(16). 받은 것이 많지만(17) 이방인 사역과 관련된 것만 말하고자 한다(18). 그 받은 것은 말하는 것과 일하는 것인데 그것으로 널리 다니며 사역했지만 교회가 세워진 곳에는 가지 않으려 했다(18-20).

13. 로마에 가려 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내게 주어진 그런 사역의 원리(20-21)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22). 그러나 이제 어느 정도 하려던 일이 마무리되었고 스페인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그래서 이제는 스페인 가는 길에 로마에도 가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23). 로마교회와의 교제도 원하는 바이지만 로마 교회의 후원을 받고 싶다(24).

14. 그러나 지금은 먼저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이방 교회들이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한 헌금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25-27). 이 일 후에 로마에 들렀다가 스페인으로 갈 텐데 로마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을 받은 자라는 것을 깨닫고 나를 위해 헌금해주기를 원한다(28-29).
나는 로마교회가 (물질적인 후원뿐만이 아니라) 나를 위해 기도해주기를 바라고 잘 받아 주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30-33).

16장
15. 로마에 있는 모든 교회는 서로 사랑하기를 바란다(1-16). 배운 가르침을 떠나 갈라지게 하는 사람들을 주의하라.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데 순진한 사람들은 그들의 그럴듯한 말에 속는다(17-18,).

16. 로마 교회의 순종의 소문에 나는 기쁘다. 지혜롭고 순결하라. 평강의 하나님을 믿으라.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바란다(19-20). 나뿐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성도들이 나와 같은 마음이다(21-24). 내가 전하는 복음은 분명한 가치가 있는 것이니 듣고 잘 순종하라. 하나님께 영광이(25-27)!

로마서 읽기 I

1장
1. [인사와 서문 1:1-15] 바울은 인사의 들머리에서 자신이 사도라 분명히 밝히고 맡은 일이 복음이라 강조하는 까닭은, 첫째는 이 복음이 구약에서 약속한 아들에 관한 것이며, 로마서의 수신자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며 은혜와 평강도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없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둘째는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사도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믿어 순종케’에서 순종의 대상은 사도이다. 5)을 바울 자신의 사도직을 분명히 말하기 위함이다(1-7). 또한 기도하는 것이나 만나기를 애쓰는 것이나 모두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이방(지역)이라면 어디든 가서 복음을 전하려 하는데 로마 역시 그 대상이다(8-15).
2.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의 능력이 되는 복음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 다시 말해 그 복음의 방식은 믿음이다(16-17). [의: 그 의는 믿음으로 나타는 의이기에 선언적이며(법정적이며) 관계적이다(선언으로 관계가 정해진다).]
3. (하나님의 의는 모든 믿는 자에게 복음으로 나타나지만) 하나님의 진노 또한 모든 불의한 자에게 예외가 없다(18). 윤리로만 기준을 삼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과 감사함에 이르지 아니한 것은 생각이 허망하고 마음이 미련하게 되어(21) 하나님의 영광 대신 썩을 것을 섬긴다(22-25). 이는 하나님께서 외면하는 바니 하나님의 외면을 받은 그들은 더욱 부끄러운 곳으로 나아간다(24-32).

2장
4. 이런 이방인을 판단하는 유대인들도 다르지 않다(1).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자신들이 특별한 선민이라고 생각하며) 오해하고(4-5) 참고 선을 행함(=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할 것을 구함)이 없으면 이것이 불의를 좇는 것인데(7-8)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구별이 없다(9-16),
5. 유대인들도, 율법을 자랑하기만 할 뿐 지키지는 않으니(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니) 심판을 면할 수 없다(17-29).

3장
6. 그러면 유대인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 그들이 믿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불신 때문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폐하여지지는 않는다(1-4).
7. (그렇다고) 사람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더욱) 드러나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5-6). 자신의 불의가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면 심판받을 일이 없다고 하면서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자’고 한다면 이는 그야말로 정죄 받을 말이다(7-8).
8. 그러므로 유대인은(우리는) (이방인보다) 낫다고 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아래 있기 때문이다(9-18).
9. (다 지켜낼 사람이 없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고(19-20), 이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다(21-22).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의니 그러므로 자기에게는 자랑할 것이 없고 오직 믿을 뿐이다(23-28). 이런 일을 하신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29-30). 그러나 이 믿음은 (율법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굳게 세우는 것이다(31).

4장
10.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구약의 예로 아브라함을 들 수 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할례가 있기(17장) 전이다. (할례는 얻은 믿음을 확증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할례자로서 믿는 사람과 무할례자로서 믿는 사람 모두에게 조상이 되었다.

5장
11. 믿음으로 의를 얻은 사람은 화평을 누리고, 은혜에 들어가게 된 것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한다. 또한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는데 이는 우리를 실망시키는 않을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망은 구원받을 것에 대한 소망이다(1-11).
12.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원리] 율법은 있는 죄를 드러나게 하는 것일 뿐 실제로 죄를 출발시킨 것은 아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는 있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은 아담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율법 쪽에 가야 할 것이 아니라 아담 쪽에 가야 한다. 한 사람 아담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 왔으니 또한 그 아담과는 다른 또 한사람이 와서 세상에 하나님의 은사를 베푸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12-19).
13. 율법은 범죄를 분명하게 하는데 그런 만큼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혜가 더욱 은혜로 드러난다(20-21).

6장
14.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고 이제 또한 연합하여 산 자가 된 것은 죄에게 종노릇하던 것을 벗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7장
15. [율법에서 놓여남의 원리]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처럼 그 반대로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죄인이 죽어도 이제 더 이상 율법이 요구할 대상이 없다(1-5).
16. 율법의 요구로 인해 죄인이 죽는다 해도 율법 자체가 죄는 아니다. 율법의 계명이 사망을 선언할 따름이다(7-13).
17. 율법은 원래 신령한 것이지만 그것이 내게 사망을 선고하는 것은, 내가 육신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육신에 속하여 신령한 율법을 지킬래야 지킬 수 없으니 (믿음으로 의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14-25a). 요약하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복종해도 본성으로는 죄의 법에 복종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25b),

8장
18.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으로 보내셔서 죄의 댓가를 치루어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기 때문이다(1-11).
19. 이제 아들을 통하여 양자(신분)의 영을 받았으면 아들과 함께 후사(직능)도 되는데 후사가 되었으면 영광만 상속할 것이 아니라 고난도 함께 받음이 마땅하다(12-17),
20. 그러나 그 고난은 장차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에 소망하는 자마다 오래 참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소망 안에서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의 소망은 보이는 것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8-25).
21. 성령께서도 이를 위하시니 마음을 들여다 보실 수 있는 하나님은 성령의 생각도 아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시고 하나님은 또한 이루신다(26-30).
22. 이렇게 (성령과) 하나님께서 위하시면 어떤 고난이 있어도 성도들을 무너뜨릴 수 없다(31-39).

9장
23. 내가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유대인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요, 낮추어 보는 것도 아니다(1-5).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이스라엘이 되는 것은 혈통이 아니라 약속과 택하심을 따르는 것이다(6-12).
24. 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두고 긍휼히 여김을 받는 이나 택함 받는 이가 불만일 수는 없다(13-29). (모든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시는 것은 당연한 처사/심판이고 그 중에서 얼마를 죽지 않게 남기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이다.)
25.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없는 이방인들이 의를 얻는 것을 보면 ‘의는 믿음에서 난다’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고,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법에 의지한 이스라엘이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30-33).

10장
26. 그러나 내가 유대인을 미워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니 잘못된 열심으로 자기 의를 세우려 할 뿐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성취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1-4).
27. 율법의 요구는 지킬 수 없기에 다다르기 먼 것이지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특별한 수고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어서 아주 가까이 있는 것이다. 곧 그것은,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는 것’이다(5-15).
28. 이 복음을 들음과 믿음이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이기긴 하지만 유대인들도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복음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다(16-17). 복음은 이미 원래 온땅과 땅끝까지 이르렀는데(18), 이방인에게도 들려진 것이지만(19-20), 유대인들에게도 항상 말씀해 오신 것이다(21).

11장
29.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하는 것이) 유대인을 버렸다는 말은 아니다. 나도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으니, 택하심을 받은 자마다 은혜를 입은 것이다(1-10).
30. 그러므로 유대인에게는 넘어지는 것 밖에 남은 것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저희의 넘어짐이 은혜의 도구가 되는데 저희가 충만하게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랴(11-12).
30.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말함]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을 그와 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원 가지가 꺾는 것은 새 가지를 접붙이기 위한 것임은 틀림없으나 그것이 믿지 않음과 믿음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 넘어지는 자들을 보면서는 하나님의 준엄하심을 기억하고 접붙여진 자신을 보면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잊지 않아야 한다(13-24).
31. 유대인의 완악함이 이방인의 구원이 되었다고 해서 유대인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오해하는 것이다. 유대인들도 동일하게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무효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25-29). 유대인도 이방인도 모두가 죄인일 때에 하나님의 큰 긍휼이 드러났으니 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누가 측량할 것인가. 세세에 주께 영광 있으라(3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