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잠언

두 종류의 비밀

  • 두 종류의 비밀

두 종류의 비밀이 있다. 보여주지 않는 비밀과 보여주는 비밀이다. 무슨 보여주는 그런 비밀도 있는가 하겠지만 그런 비밀이 *있*다. 그런 비밀을 우리는 신비神祕라 일컫고 (가끔은 오의奧義 또는 비의秘義라 하기도 하고) 영자로는 mystery라 쓴다.

그럼 보여 주지 않는 비밀은? 당연히 secret 이다. 주민등록번호 등과 같은 개인정보, 로그인 암호, 유부남이나 유부녀의 애인, 아들은 모르고 (알아서도 안 되고) 아버지만 아는 어머니의 여성성 등은 secret이고, 위대한 자연의 광대함과 심오함, 겉으로 보아서 알 수 없는 그 남자나 여자의 오묘한 마음 등은 mystery다.

secret의 본질은, 사실은, 막거나 가리거나 숨기거나 그런 것이 아니고, ‘접근불가access denied’이다.
그리고 mystery의 별명은 ‘원더풀’이지만, 본질은 ‘이해불가 beyond understanding’이다. 인간의 무능력과 무지 無知 가 mystery의 한 축인 셈이다.
secret은 깨고 싶어도 지켜야 하는 것이고 mystery는 알 수 없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 비밀 – secret

수많은 secret이 이 시대에 횡행하고 있지만 성경이 주목하는 secret은 오직 하나의 secret,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하나뿐이다. 이 secret의 목적은 그 열매를 보호하자는 것도 하나님을 보호하는 것도 아니다. 이 secret의 목적과 역할은 아담을 보호하고 아담의 신분을 보장하는 것이다.

아담의 으뜸 신분은 피조물이고, 버금 신분은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이며 버금딸림 신분은 왕인데 별명은 ‘참 좋았더라 very good’이다. 그런데, secret을 깬 아담은 ‘피조물됨’을 벗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죄인’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추가로 얻었고, 왕의 신분은 잃어버렸다.

  • 아담의 선택

아담에게는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가는 길과 그리로 가지 않는 길이다. 아담에게는 두 가지 먹거리가 있었다. 그 열매를 먹는 것과 그 열매는 먹지 않는 것이다. 그 두 길은 동시에 갈 수 없는 길이고 그 두 삶은 동시에 살 수 없는 삶이다.
아담 앞에는 두 가지 지식이 있었다. 하나는 금지된 것도 알아버리는 지식이고 하나는 금지된 것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지식이다. 그 둘을 함께 알 수는 없다.

아담은 돌아 올 수 없는 길로 나아갔고 뱉아 낼 수 없는 열매를 삼켰으며 금지된 것을 들여다 보았다.

비밀을 깨자 깨어진 것은 비밀이 아니라 관계였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그리고, 모든 관계가 깨졌다.
금지된 것도 아는 신지식 advanced ideas 를 추구했지만 그가 얻은 새로운 지식은 부끄러움이었다.
주어진 빛 너머의 빛을 보고자 했지만 그가 보게 된 것은 부끄러운 자신이었고, 선과 악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리라 했더니 얻은 것은 하나님을 비롯하여 나 아닌 모든 타자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었다.

아담은 secret을 풀고 죽음을 얻었다.

  • 비밀 – mystery

최고 최후의 mystery는 하나님이다(이하에서 그냥 비밀이라 하면 secret이 아니라 이 mystery를 말하는 것이다). 보아도 알 수 없는 것이 mystery인데(그래서 감취었다고 한다),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아무리 펼쳐 보여주셔도 그것을 보고 하나님을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이해 능력 안에는 하나님이 스스로를 다 펼쳐 놓을 공간도 없다.

하나님이 mystery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 즉 창조와 구원과 심판도 mystery이고, 그것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도 mystery다.

mystery -하나님,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말씀 – 은 사람을 둘로 나눈다. 그 둘은 mystery를 받아들이는 사람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과 말씀을, 즉 그 mystery를, 받아들인다는 뜻은 밑도 끝도 없는 하나님 앞에 고개와 마음을 숙인다는 뜻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아담의 범죄 이전에는 secret을 지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지 말라 하신 말씀에는, 먹고 먹지 않고의 문제가 걸린 것이 아니라 순종의 문제가 걸려 있었다. 그 말씀은 하나님 앞에 자기를 숙이는 표의 요구이다.
그리고 아담의 범죄 이후에는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판가름난다.

  • 비밀의 계시 – 어린 양의 죽음

하나님은 영원무궁히 비밀mystery로 남아 계시고 인간에게는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신다(다보여 주실 수는 없다는 것은 이미 이야기했다). 그것이 계시revelation이며 계시의 폭이다(계시의 폭이 하나님의 폭이 아니며 하나님의 폭이 계시의 폭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계심과 그 일하심 중에서 이 세계에 나타난 전체가 하나님의 계시요, 계시 사건이다. 그리고 인간 이해 능력은 이 계시의 폭 안에 있다. 인간의 이해능력의 폭은 하나님의 계시의 범위를 넘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과 온 세계)의 생명도 그 안에 있다. 이 계시는 하나님의 사역인데 계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다. 계시가 없으면 창조도 없고 (창조는 계시의 일환이다) 구원도 없고 심판도 없다. 계시가 창조로 나타났고, 구원과 심판도 계시를 따라서만 진행하고 성취된다.

아담의 불순종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창조에서 구원과 심판으로 나아가지 않고, 창조에서 창조의 완성으로(그것을 무었으로 부르든) 나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아담이 범죄하자 아담의 구원과 아담의 심판이 새로이 요청되었다. 아담의 구원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아담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아담의 창조가 실패로 끝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요, 아담이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기 때문이다.

구약 또는 성경 전체는 이 상호 배타적인 난제를 해소하시는 하나님의 사역/능력 즉 하나님의 깊은 mistery file이다.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하나님의 사역의 mystery를 우리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큰 얼개는 우리에게 누누히 다양한 방법으로 알려주셨고 그래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사람만 그것을 안다. 그것은 죄 없는 어린양의 대속의 죽음을 통한 심판과 속죄와 구원이다. 구약은 하나님이 하시는 이 일의 기이함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어린 양의 죽음의 의미는 죄 없는 의인이 죄인의 죽음을 대신 감당하는 것이다. 대신 죽으면 덕분에 사는 일이 발생한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는, 하나님의 큰 나라는 이 방식으로 성취된다. ‘하나님의 산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제물의 죽음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큰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웃음- 이삭-은 꽃이 핀다. 요셉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야곱-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사망의 세계와 시간 속에서 생명을 얻는다. 결정적으로는 유월절 어린양이 이스라엘을 살린다. 구약은 이 하나님의 기이한 일 – 하나님의 큰 지혜 – 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증거하며, 어린 양의 피를 믿는 이스라엘이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를 알려준다. 구약은 이것을, 율법과 계명과 율례로, 역사로, 노래와 시로, 묵시와 예언으로, 잠언과 같은 지혜문학으로 보여주었다.

  • 비밀의 계시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러나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 기이한 일하심 즉 구약에 나타난 비밀, 즉 구약의 계시는 장차 올 것의 모형이요 그림자였다. 짐승의 죽음이 아담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또한 동시에, 그 제물과 제사와 제사장이 다 임시적-시공의존적이었기 때문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은 친히 제물과 제사장과 제사를 다 준비하셔서 이 땅에 보내셨다. 이 하나님의 준비 – 여호와 이레 – 가 우리의 믿는 구주 예수시다.

그의 출신도 그의 출생도 죄가 개입되지 아니하였다. 여기까지는 아담과, 죄가 없이 났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남은 것은 순종이다. 예수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하셔서 죄 없이 죽으심으로 당신의 죽음이 값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예수의 죽음에서 진노를 멈추시고, 죽었던 그를 다시 살리심으로 구원을/창조를 이루셨다. 이 모든 일을 다 담당하신 예수를, 사도를 비롯한 신약 기자들은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6-27, 2:2)

  • 비유 – parables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의 깊은 것을 나타내시는 최고 최후의 계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과 사역은 하나님의 일과 사역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스스로를 계시하셔서 하나님의 mystery 즉 하나님의 재창조와 구원과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는 것을 다 이루시니 그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은 둘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예수께서 오셔서 이 비밀을 말씀하실 때는 비유로 말씀하신다. 즉  mystery를 담은 이야기를 비유parable이라 하는데(metaphor, simile, metonymy, figurative, allegory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이 비유 역시 듣는 사람을 둘로 나누고, 나눌 뿐 아니라 나누어진 둘 사이를 더욱 분명하게 한다. 그것이 비유의 목적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비유가 이런 기능과 목적을 가지고 있는 까닭은 비유가 담고 있는 내용 즉 하나님의 계시가 그런 기능과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in parables)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mystery)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마 13:10-16 …. 34)

  • 지혜의 잠언, 비유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한다(1:7,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존중하여 따르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면 먹지 않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나도 여호와와 같은 지식과 지위를 가지고 싶은 것을 부인하고 그 말씀 안에서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지혜다. 그리고 생명이다.

어린양의 대속의 죽음 외에는 달리 살길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이며, 받아들이고 난 뒤에는 그것을 언제나 잊지 않고 그 길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함께 은혜 얻은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지혜이다. 짧게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지혜요, 길게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 서로 용서/용납하면서 –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이 지혜이다. 잠언은 바로 이 이야기이다.

잠언proverbs은 히브리말로 마샬 משׁל(mashal) 인데, 시 49:4, 78:2; 겔 17:2, 20:49, 24:3 등에서, 한글로는 ‘비유’로 번역되었고 영어로는 ‘proverb’ 또는 ‘parable’로 번역되었다. 이 히브리말을 헬라말로 고치면 παροιμία(paroimia) 또는 παραβολή(parobole)가 된다(라틴어로는 parabula가 된다). 바로 이 말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비유이다.

잠언과 율법서와 역사서와 시가와 묵시가 표현의 양식만 다르고 실상의 내용은 동일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께서 ‘비유(=잠언)’가 아니면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는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의 어느 책이든지 공히, 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일과, 구원을 이루셔서 의 없는 자들을 의의 나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와, 은혜 입은 자들의 삶의 마땅한 방식을 이야기해 왔는데, 마침내 예수께서 오셔서, 그림자만 보면서 실상을 기다리던 모든 이의 소망을 다 채우셨다.

이 여호와 경외를, 즉 지혜를, 그리고 이웃 사랑을 예수 홀로 다 이루셨는데 그 이루신 곳이 십자가이다. 십자가에서 여호와 경외와 이웃 사랑이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마다 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성도의 지혜라 한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 1:22-24 ….. 30-31)

하나님(의 비밀mystery)은 깊은데/깊지만 , 우리의 왕이신 예수는 넉넉히 지혜로우셔서 하나님의 그 깊은 비밀을 다 살펴 아신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비밀이 있으니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다. 옛 아담과 같지 아니한 둘째 아담 예수께서, 높아지지 아니하고 낮아지심 – 순종 – 으로 모든 하나님의 비밀을 받으셨는데, 우리는 그 예수 안에 있으니 예수는 하나님의 비밀인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비밀이다. 그리고 그 왕을 본받아 스스로 귀인이 되지 않는 것, 예수를 왕으로 섬겨 사는 것, 은혜 받은 백성들이 서로 용서하며 사는 것, 즉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비밀이다. 세상이 늘 보고 있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의 mystery다. 보여주어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다. 성도마다 이 비밀을 가졌다. 당신은 나와 함께 이 비밀을 가졌는가?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 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 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 하지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 말라
이는 사람이 너더러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 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 (잠 25:2-7; 참조 눅 14:7-11)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롬 11:3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