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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강의 2

1:1-5
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는 왕이 없어 사람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던 때를 말한다(삿 21:25). 왕이 없다는 것은 왕을 기다림을 말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을 고대한다. 그것이 사사기의 결론이며 또한 사사기의 절망인 동시에 사사기의 소망이다.

왕이 없고 사람이 주인이 된 때에는 그 앞에 광야와 전쟁과 기근과 단명과 무자녀의 슬픔이 있다. 룻기는 엘리멜렉 가족을 들어 그 사사기의 단면을 보이면서 시작하는데 시작하자마자 10년이 지나간 후의 장면 – 비참한 – 을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의 여러 노력이나 시간의 흐름으로는 사사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모압 지방에 피하는 것 정도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사태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아무 것도 없는 것밖에는 없는 과부들만 남은 것이 바로 사사기의 모습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길은 어디에 있는가?

1:6-18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좋은 소식은 항상 여호와로부터 출발한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을 돌보심으로 출발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출발점이 없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그 출발점에 서는 사람 – 나오미 – 는 지난 시간, 공간, 관계를 버리고 나서야 한다. 아브라함처럼.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그러나 나오미의 출발은 아브라함의 그것과 모든 점에서 일치한다는 뜻은 아니다. 두 자부를 두고 가고자 하는 말과 모습 속에서 나오미는 자신의 지난 10년이 부끄러워하는 듯 하기 때문이다. 나오미는 이방의 며느리를 데려 감으로써 슬픈 10년의 흔적이 긴 꼬리를 드리우는 것을 피하고 싶다.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그러나 이런 새로운 출발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너의 것이기도 해야 한다. 룻이 나오미와 함께 출발선에 서려 하는 그 소원은 나오미가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였다. 그러나 룻이 따라 나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오미는 실패한 인생의 현저한 증인이고 나오미가 그렇다면 나오미가 그래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는 하나님 역시 그럴 수 밖에 없을 텐데, 즉, 작은 사람과 작은 신일 수 밖에 없는 쪽으로 나오미와 함께 떠나고자 하는 룻은 기이한 사람이다. 룻은 무엇을 보았을까.

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2: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1:19-2:4
돌아왔지만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돌보심이 아직은, 적어도 아직은 나오미/룻의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인생의 쓴 맛 – 마라 – 즉 기근과 죽음의 깊은 곳에서 돌아 온 그때가 마침! 보리 추수 – 하나님의 은혜 – 시작할 때이며, 나오미와 함께 돌아온 룻이 이삭을 주으러 간 밭은 우연히 유력한 보아스의 밭이다. 그리고 또 마침 보아스는 그 때 그 밭에 도착한다.
룻기는 우연의 연속으로 진행 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 속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심(1:6)’이 나오미와 룻에게도 적용되는 것인지 또는 적용될 수 있을 것인지 주목하게 한다. 풍족함과 생명은 과연 나오미와 룻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될 수 있다면 어떻게 될 수 있을 것인가.
이삭을 줍는 일에 나오미보다 룻이 먼저 나선다. 나오미는 창피하기도 하고 용기도 잃고 절망 가운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룻은 어떻게 나설 수 있었을까? 젊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오미보다 젊었기 때문일까?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2:5-16
보아스가 유력하다 – 강하다 – 는 것은 보아스가 하나님께 복 받은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은 그가 자기 뜻대로 사는 사사기의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사는 용감한 사람이라는 증거를 내 보이는 함축적인 표현이다.
보아스가 사는 하나님의 뜻대로의 삶은 인애/자비/사랑의 삶이다. 보아스가 사환들과 룻을 대하는 말과 모습에서 그것이 드러난다. 그것이 이 본문의 목적이다. 보아스가 어떤 사람인지 내보이는 것. 보아스는 사사기에 등장하지 않는 또 하나의 사사이다. 그리고 그는 룻기 안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요. 하나님의 구원을 가지고 올 자이다.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19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21 모압 여인 룻이 이르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하니 22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

2:17-23
나오미는 룻을 통하여 보아스를 만나게 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서 나오미는 룻이 – 또는 나오미 자신까지 포함하여 – 사사기를 이제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인지 깨닫는다.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 중에 하나이지만 기업 무를 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은 인애/자비/사랑이다. 룻은 보아스 외에 다른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다(22). 룻은 보리 추수가 지나고 밀을 추수할 때까지도 보아스의 밭에서 보아스의 은택을 입는다.

3: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3:1-6
나오미는 ‘보아스를 통한’ 룻의 안식을 소원한다.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던(2:23) 룻은 보아스와 함께 거주할 것을 종용받는다. 안식은 안식하는 이와 함께 거주할 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원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원은 나오미에게 있고 행동은 룻에게 있지만 안식의 주도권은 보아스에게 있다.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4b).”
주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 ”

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8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10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1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3:7-11
사사기의 한 가운데서 보아스는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운 하늘의 복락을 누리는 사람이다. 아니 그것을 넘어 하늘의 즐거움을 사사기 한 가운데로 가지고 오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 아래서 보호받으면 사는(2:12) 즐거움을 알아서 룻도 그럴 수 있기를 축복했는데 이제 룻은 ‘보아스를 통하여’ 그것을 누리고자 한다.
룻을 향한 보아스의 칭찬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한 것을 따랐던 – 자기의 소견대로 행하였던 – 하와를 떠올리게 한다. 룻은 자기 소견대로 행하지 않고 율법을 따라 행한다. 보아스는 그런 룻의 행동이 인애라고 말한다. 룻의 인애는 기업을 잇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분부하신 그 분부를 따르는 것이다. 말씀을 따르는 것이 아니면 인애가 아니다. 인애는 마음이 따뜻한 것이 아니다.

12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14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15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16 룻이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17 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 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하니라 18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3:12-18
이제 남은 것은 누가 참으로 기업 무를 자이냐 하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법 – 형식 -을 넘어 법의 정신 – 인애와 사랑 – 을 실현하기를 기뻐하는 이가 보아스 자신임이 드러날 때까지 보아스는 힘쓸 것이며(18) 그 일을 위하여 – 죽음/희생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의 발길처럼 – 보아스는 성읍으로 들어간다(16).

4:1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2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4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5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7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4:1-12
일어나는 일들마다 우연인 듯하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성실 덕택이다.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는 우연히 지나가지만 보아스가 마침 그를 만나게 되는 것은 보아스가 열심히 성문에 들어와 성실히 그 문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대화의 중심 주제는 기업을 무르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무르는 정신, 즉 인애, 즉 희생이다. 자기 몸을 찢어 자기에게 속한 이를 먹이시는 예수처럼, 강도를 만난 이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털어 돌보았던 사마리아 사람처럼, 보아스는 자신의 손해로 룻을 구원하고 아무개는 그 일에서 손을 뗀다. 인애/사랑이 없으면 구원이 없다. ‘무르는 사람’을 정확히 번역하면 ‘Redeemer 구원자’이다.
보아스의 집 사람이 되는 룻은 이스라엘을 세운 라헬과 레아와 같고, 룻을 받아들인 보아스는 복을 받고, 보아스의 집은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언약에 충실했던 다말로 인해 경이롭게 이어진 베레스의 집처럼 경이로운 집이 될 것이다.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18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19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4:13-22
혈통으로 말하자면 기업의 이름이 엘리멜렉으로 이어져야 하겠지만 하나님의 집의 기업은 영으로 이어지는 것이라서, 마음에 할례를 받은 새로운 유대인이 몸에 할례를 받은 옛 유대인을 대체하는 것처럼, 엘리멜렉의 집은 사라지고 보아스의 집이 선다. 새로운 창조 세계에는 하나님이 선물하신 생명 – 오벳이 탄생하며 그래서 나오미의 사사기는 끝이 나고 곧 왕이 온다.

여기 이 짧은 족보는 만왕의 왕이 온 길을 보여주는 마태복음 족보의 구약판이다. 성경의 모든 언약 족보는 베레스의 족보 전통 위에 있다. 베레스의 족보는 다윗왕이 오는 족보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왕이 탄생한다는 족보이며, 혈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족보이며, 우연과 마침으로 이어지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의 경이로운 성실과 자기 백성 돌보심의 인애를 보여주는 족보이다. 우리는 그 족보 끝에 오신 우리의 보아스 발치에 누워 그의 덮어주시는 옷자락 아래에서 안식을 누린다.

룻기 강의 1

1.
아담은 하나님께 기업을 받는다. 하지만 아담은 불순종으로 기업을 잃어버리고 곤고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셋, 노아 등을 통하여 다시 기업을 돌려주실 것을 보이신다. 노아 때의 재창조가 전 세계적 재창조요 기업을 (다시) 얻은 자 – 또 다른 아담 – 개인(의 즐거움)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아브라함을 부르심은 재창조를 나라/공동체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이 또 다른 아담인 아브라함(과 그 자손 즉 이스라엘) 역시 새로운 기업을 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역시 아담처럼 불순종하고 그래서 기근이 찾아 오고 그들은 기업을 잃어버린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기업을 물어주시고 아담은 끊임없이 기업을 잃어버린다. 이것이 창세기이다.

2.
아브라함/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업을 떠나,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서 죽음과 같은 삶을 살다가 하나님께서 기업을 물어주시는(그래서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인 것이다) 은혜로 그들이 받은/받을 기업 – 가나안 – 으로 출발한다. 재창조는 유월절에 시작되었고 광야에서 계속된다.
창조된 백성은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그 안에 담고 살아야 한다. 창조하시는 하나님은 기업을 주시는, 그래서 그 기업을 받는 이에게 기쁨과 안식(룻 3:1)을 주시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에게 서로의 기업 – 하나님이 주신 기업 – 을 보장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제사는, 받은 땅이 참된 기업이 아니라 하나님이 참된 기업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고 그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율법이다. 그리고 이것이 출애굽기이며 레위기이며 신명이기다.

3.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에는 하나님이 주셔야 들어간다(창조/재창조는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큰 일’이다). 그리고 이것을 알고 고백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만 들어간다. 이것이 광야 40년의 기록이다. 기업을 물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즉 가나안을 돌려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즉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여호수아는 이의 기록이다.

사사기는 이 모든 것을 하나의 패턴으로 보여 주면서, 왔다가는 떠나고 떠났다가 다시 오는 구원자가 아니라 항상 함께 하며 다스려 주는 ‘구원자-왕’을 기대하면서 끝난다. 룻기는 그 구원자-왕이 어떻게 왔는가 하는 것에 대한 기록이다.

4.
룻기는 엘리멜렉이나 나오미 또는 룻을 주목하지 않는다. 심지어 보아스도 주목하지 않는다. 룻기가 주목하는 것은 엘리멜렉 가족의 위치 – 기근/땅의 불임 – 이다. 그리고 룻기가 주목하는 것은 보아스의 일/역할이다. 룻기가 주목하는 것은 사사기가 고대하는 것과 같다. 사사기는 왕을 소망하고 룻기는 왕이 오는 길을 보여 준다. 그 왕은 다윗이다.
룻과 나오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 모험, 책략 등을 내놓지만 그 일을 이루는 것은 보아스의 자비요, 하나님의 자비다. 사람은 역사 속에서 우연히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우연히 일하지 않으신다고 룻기는 외친다.

5.
이 하나님의 자비 덕택에 이스라엘은 기업을 – 아담과 이스라엘이 잃어버렸던 – 돌려 받는다. 그리고 이 자비의 정신으로 그들을 다스릴 왕을 이스라엘에 허락하신다.
오늘날의 우리 역시 바로 이 하나님의 자비 덕택에 – 하나님이 몸소 자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덕택에 – 하나님의 나라를 얻는다. 우리는 그 속에 있고 하나님의 자비는 아니 자비의 하나님은 친히 – 옛날 다윗이 대리자였던 것과는 달리 – 다스리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