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이해 I

사도행전은 복음서의 재현이다. 복음서는 아들을, 사도행전은 교회를 그린다.
성부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아들은 교회를 세상에 보내신다. 아들은 성령을 받고 일을 시작하시고 교회도 성령을 받고 일을 시작한다. 예수께서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이방 갈릴리까지 다니셨고, 교회도 유대와 사마리아와 이방까지 그리고 더 먼 이방으로 나아간다. 예수께서 말씀과 능력으로 사역하심과 같이 교회 역시 말씀과 능력으로 사역한다. 예수께서는 예수 자신을 증거하시고 교회 역시 예수를 증거한다. 예수에게도 배척하는 자와 따르는 자들이 있고 교회에게도 배척하는 이들과 따르는 이들이 있다. 예수가 가는 길도 죽음으로 가는 길이고 교회가 가는 길도 죽음의 길이다. 예수도 죽고 교회도 죽는다. 죽은 예수는 하나님이 살리시고 교회 역시 항상 죽지만 하나님께서 또한 항상 살리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행전을 읽을 때, 교회가 예수의 길을 고스란히 뒤따르는 것을 보면서, 그 교회가 예수의 교회라는 것과, 예수와 교회가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이것, ‘교회가 예수의 교회임’을 보여주는 것, 즉 ‘교회의 공인’이 사도행전의 목적이다. 그렇게 해서 교회가 예수의 교회됨이 공인되면, 즉 사도행전이 끝나면 ‘사도시대’라는 독특한 계시의 시대는 일단락된다. 이제 사도후시대의 우리에게 남은 계시는 사도들이 받은 복음과 믿은 진리와 고백한 신앙이 담긴 성경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의 사역은, 계시의 측면으로 볼 때, 사도시대와는 달리, 성경에 기초한다. 사도들은 듣고 본 것을 증거하였으나 이 시대에는 그들이 듣고 본 것을 기록한 성경에 기록된 내용으로 증거한다. 사도시대에는 성령께서 능력으로 이것이 교회다 하고 증거하셨으나 오늘날은 성령께서 교회와 함께 하시며 사도들이 전해준 대로의 믿음을 지키도록 섭리하신다.

아래에서, ‘-’는 작은 토픽이고, ‘*’는 설명이다.

1. 성령

- 사도행전에서의 성령 받음의 의미(1:4-8; 2:1-41)
* 예수께서 성령을 받고 사역을 시작하셨듯이 교회도 성령을 받고 사역을 시작한다. 즉 성령 강림은 예수에게도 교회에게도 임명식이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그 공동체를 교회로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인증이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교회가 출발할 수 없었다.
* 임하신 성령은 교회를 떠나지 아니하고 항상 함께하시며 교회를 지키신다. 교회를 지키신다는 뜻은, 교회가 박해를 받거나 사도나 누구가 핍박이나 심지어 죽음을 당해도, 그래서 그 개인이나 그 지역의 교회가 사라져도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는 사라지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왕성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교회는 항상 죽지만 성령께서는 항상 교회를 살리신다. 조금 부연하면, 교회를 삶과 죽음으로 말한다면, 교회는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는 것이 교회인데, 주를 위해 죽는다는 뜻은, 내가 죽으면 나의 죽음으로 인해 주의 일에 보탬이 되기 때문에 죽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시인하는 것, 그것 자체가 주를 위해 죽는 것이다. 이런 ‘죽지만 죽지 않고 죽어도 죽지 않는 교회’에 대한 이해에서 교회의 ‘왕성함’에 대한 이해도 새롭게 되고 또 새롭게 되어야 하는데, 왕성함 가운데 늘어나는 교인수와 교회수를 보고 찬탄하는데서 멈추면 전형적인 인간적 시각으로 교회를 이해하는 것이다. 교회의 왕성함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교회의) 생명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것’이기 때문에 스러지지 않으며 스러질 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태초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신 말씀이 기어코 이루어지는 것을, 즉 하나님의 성실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창조와 또 언약이 성취되는 것을, 우리는 교회의 왕성함을 통해 보는 것이다.

- 성령 받음과 은사 또는 능력 행함(2:1-3:26).
* 성령 받는 것을 어떤 현상 – 특히 방언이나 뜨거움 등 – 과 결부시켜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방언이나 뜨거움이 아니다. 방언이라면 방언 자체가 아니라 방언의 내용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큰 일(2:11)’을 말한다. 하나님의 큰 일이란 예수의 부활이다. 하나님께서 죽은 예수를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다는 사실이다. 또 성령을 받으면 능력을 행한다(3:1-10)는 생각에 빠져드는 것도 옳지 않다. 예수께서는 능력을 행하심으로 자기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증거하셨듯이 교회는 능력을 행함으로 예수를 증거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와 예수가 하나라는 것이 증명된다.

- 사도후시대의 성령받음과 성령 받음의 증거
* 당연히 우리도 성령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받을 때 오순절 성령 강림 때의 현상과 동일한 모습으로 오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순절 때의 성령 강림은 성경이 완성되기 전, 교회가 시작되는 시기, 독특한 시기다. 이제 우리가 성령 받음은 초대 교회의 사도들을 중심으로 성령 받은 교회가 고백한 신앙을 그대로 믿는 것이다. 뜨거움을 사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뜨겁게 주를 사랑하는 것을 사모해야 한다. 뜨겁게 주를 사모해야 할 뿐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주를 사모해야 한다. 뜨겁게 되어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우리가 취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2. 예수

- 예수는 누구인가.
* 예수는 주다. 예수가 주란 말은 무슨 뜻인가.
먼저, ‘주’의 뜻은 모든 것의 주재자라는 뜻이다. 주에게는 능력power과 권한/권세authority가 항상 함께 있다. 주의 능력과 권세 아래에 속한 사람은 주를 경배하고 예배한다. 능력은 어떻게든지 할 수 있는 힘이요, 권세는 맡겨진 바 된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니 창조주의 능력은 그 뜻대로 창조하실 수 있는 힘과 또 그 뜻대로 지켜 나가실 수 있는 힘이다. 창조주의 권세는 창조에 관한 모든 것이 창조주께 맡겨져 있음을 뜻한다. 예수는 교회의 주시니 예수는 교회를 세우실 수 있는 능력과 교회를 지키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교회에 관한 모든 것은 예수의 권세/권한 아래 있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뻐하고 섬기며 그 뜻만을 따라 산다. 교회 역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를 섬긴다. 다른 것은 섬기지 않는다. 예수가 주이기 때문이다.

- 예수는 그리스도다. 예수가 그리스도라 하는 뜻
*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다.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어떤 일을 위해 세우는 임명이며 임직이다. 성경에서는 특별히 기름을 부어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을 세운다.

* 왕은 섬기는 자다. 다스린다라는 표현을 쓴다면 섬김으로써 다스리는 자다. 대표적인 왕은 다윗이다. 다윗이 목자의 일을 할 때에 왕으로 부름받았다는 것은 유의미하다. 목자는 양을 먹인다. 그리고 양의 생명을 보호한다. 달리 말하면 목자의 모든 삶이 양을 향해 있다. 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 – 생명 – 으로 먹이고 살리는 것, 다시 말해 양을 위해 죽는 것, 이것이 왕노릇의 결국이다. 백성은 이 왕이 생명으로 섬겨주는 덕택에 산다. 백성이 살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왕은 자신(의 생명)을 양식으로 내어주는 섬김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자다. 선지자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과거의 일도 말하고 현재의 일도 말한다. 중요한 것은 시제가 아니라 그 말 중에 자기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말은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과 입에 넣어 주신 말만 한다.
선지자/하나님의 말과 사람의 말은 다르다. 사람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신이 사람을 위해 일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를 피조물과 죄인으로 아는 것이며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와 경배하고 용서를 구하고 생명을 얻는 것이다. 선지자는 사람의 뜻과 다른 이 하나님의 말을 하다가 사람들에게 죽음을 당한다. 그것이 선지자 노릇이다. 선지자는 죽으면서 생명의 말을 하고 이 생명의 말을 영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고 생명을 얻는다. 하나님의 백성이 탄생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선지자 역시 죽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는 자다. 제사의 요체는 제물이다. 제물의 중심은 대신 피 흘려 죽는 것이다. 대신 죽는 것이 아니면 제물이 아니다. 대신 죽음의 요체는 제물이 흠결이 없어야 하는데 이는 죄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제사장은 제물을 죽이기만 하고 제물의 죽음과는 따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제물의 피를 자신의 몸에 바르고 제물을 먹음으로써, 제물의 죽음에 제일 먼저 동참하며 제물의 죽음에 자신을 제일 먼저 일치시킨다. 이 제사장이 제물의 대신 죽음을 하나님 앞에 고하면 백성은 사하심을 얻고 생명을 얻는다. 하나님의 백성이 생명을 얻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정리하면, 제사장 역시 죽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 왕도 메시아(기름부음 받은 자) 이고 제사장도 메시아이며 선지자도 메시아인데, 메시아됨의 요점은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거나, 기름 부음을 받아서 왕, 선지자, 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 때가 차매 아들이 오셨고 오신 아들에게는 성령이 임한다. 성령이 임할 때 하늘로서 소리가 들려 사랑하는 아들을 이야기한다. 아들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에게 모든 당신의 뜻을 담아 보내셨고 보냄받은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뜻을 이룬다. 다시 말해 아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성령 부음을 받은 메시야의 총합이다. 아들이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는데도 메시아(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불리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을 위해 보냄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성령 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자신의 살과 피로 새 백성을 먹이시는 왕이시며, 자신을 제물로 드려 제사하는 제사장이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죽기까지 말씀하시는 선지자이시다.

*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 예수 그리스도로, 즉 그리스도를 주로 부르는 이유는, 교회가 아들의 사역 (메시아사역) 덕택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창조주이며 구주이기 때문이다.

3. 교회

- 교회는 무엇인가? (1:8; 벧전 2:5,9; 2:42-47; 4:32-5:11; 계 1:6, 5:10 등)
* 교회의 조건은 성령이다(이는 아담이 하나님의 생기로 생령이 되는 것과 같다). 성령이 교회의 출발이다. 교회의 존재론적 정의가 ‘성령 안에 있는 교회’ 또는 ‘동일한 성령으로 주님과 하나인 교회’ 또는 ‘하나님의 영을 공동으로 소유한 새 이스라엘’ 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면, 기능적 정의는 증인이다. 연결해서 생각하면, 성령이 반드시 임해야 하는데,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으면 증인이 된다. 요는 존재론적 정의와 기능적 정의가 공히 중요한 것이고 그것들이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데 증인이 아니거나 증인라고 하는데 성령이 임하셔서 세우신 교회의 사도적 신앙 전통에서 떠나 있다면 교회가 아니다. 좀 풀어서 설명하면, 예수와 교회가 하나인 근거는 예수와 교회가 같은 성령을 소유했다는 것이요, 예수와 교회가 같은 성령을 소유했으므로 교회가 하는 일은 예수께서 하신 일의 연장선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증거하셨으므로 교회도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으니 교회도 예수님의 증거와 동일하게, 예수 외에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증거하는 것이다.

* 교회가 주님과 하나가 아니라면 교회는 주님을 증거할 수가 없다. 교회의 증거는 돈을 주고 배우거나 지나가다 얻어들을 것으로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과 하나된 자로서 증거하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와 하나인 그 무엇인데 사도행전을 벗어나서도 성경이 그 하나됨을 말하는 것은 여전하다. 교회는 신랑이신 예수와 하나인 신부이거나, 머리이신 예수와 하나인 몸이거나, 모퉁이돌이신 예수와 하나인 성전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강조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교회는 예수와 하나라는 점이 관건이다. 하나가 되면 – 성령을 받으면 – 알게 되는데 그 지식은 연합한 자만이 갖는 지식이며 그 지식은 곧 권능이다. 증거는 이 권능, 이 사라지게 할 수 없는 굳건한 반석같은 견고함으로 하는 것이다. 증거는 권능으로 하는 것이며 권능은 성령 받은 교회의 참된 지식이며 이 지식은 연합한 자만이 갖는 지식인데 연합은 성령의 오심으로 이루어졌다.

* 교회는 예수와 연합한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가 증인이라면 예수를 증거하는 증인이다. ‘내 증인’이라는 말씀의 뜻이 그것이다. 교회가 성령을 받고 교회가 되면 예수의 증인이 된다. 예수의 증인이 아니면 교회가 아니다. 예수의 증인이란 예수에게 속한 증인이요, 예수께서 보내신 증인이며, 예수를 증거하는 증인이란 뜻을 다 가지고 있다.

- 예수를 증거한다는 것의 뜻
* 첫째는 예수의 왕되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의 왕노릇을 증거한다는 뜻은 예수의 섬김을 증거한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즉 당신의 생명으로 즉 당신의 살과 피로 생명의 양식 되어주심으로 그가 교회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 둘째는 그의 제사장, 제물, 제사되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제사의 중심에는 죄없는 제물의 죽음이 있고 죄없는 제물의 대신 죽음으로 용서와 사하심이 이루어진다. 이 예수의 제사 덕택에 용서와 사하심을 얻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 셋째는 예수의 선지자되심을 증거하는 것이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데 교회가 예수의 선지자임을 증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예수에게서 모두 담겼다는 것을 증한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제 예수 외에 다른 누구를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를 알지 않고는 아버지를 알 수 없다고 선포하는 것이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는 것이고, 변화산 위에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모세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저(예수)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 것이다.

* 이 증거는 교회 밖을 향하기도 하지만 교회 안에서도 항상 선포되고 증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 예수께서 당신의 살과 피로 – 생명/사랑으로 – 먹이시고 섬기시는 방식으로 왕노릇하신 것이 교인들 사이에도 요구된다. 교인들은 서로를 돌보고 섬기면 이것이 곧 성도들의 왕노릇이다. 예수께서 죄 없이 대속의 제물되어 피흘려 하나님의 용서를 얻으셔서 백성들에게 살 길을 주셨으니 교인들 사이에서도 서로 용서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이 성도의 제사장 노릇이다. 이 둘을 아울러 성도를 가리켜 왕같은 제사장이라 하는 것이다. 또한 성도는 서로 예수로 권면하고 복음으로 권고하기에 모든 성도는 선지자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뜻을 아들에게 담으셨으므로 – 말씀이 육신이 되셨으므로 – 성도들이 서로 예수 이야기를 하면 그 때마다 성도들은 서로 선지자 노릇하는 것이다. 이렇게 교회에 속한 성도들마다 예수와 연합한 자로 사는 것, 이것이 교회 안에서의 증인으로 사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성도의 삶, 즉 주님과 한 몸이룬 연합과 성도의 한몸된 영합의 삶이다. 초대교회에서 보이는 유뮤상통은 이 교회의 성도간의 한몸됨을 외치는 것이다. 그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은 이 연합을 이루신 성령을 거역함이 심각하고 치명적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 교회가 가는 길은 어디인가.(행 4:1-18; 7:51-8:3, 요 17:14, 15:19 등)
* 교회가 가는 길은 예수께서 가신 길과 같다. 예수께서 가신 길이 증인의 길이었는데 그 길은 이제는 교회가 위임받았다. 그리고 그 증인의 길은 고난과 죽음의 길이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으면 교회는 예수의 제자임이 분명하다. 또한 교회가 가는 길은 생명의 길이다. 예수께서 다시 사신 것처럼 교회 역시 죽어도 죽지 않고 항상 다시 살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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