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가 조금 발을 담그고 있는 선교단체의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여기 블로그에서도 관계된 글을 번역하다가 마무리를 못하고 묵혀두고 있는 포스트들이 있는데 http://parabolog.wordpress.com/page/3/?s=purpose+driven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벌써부터 (2005년) 여기서 나누고 싶었지만 게으름의 병이 깊어 그러지 못하다가 얼마 전 교회에서 함께 생각할 기회를 가진 후 우리 SU선생님들과도 나눌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홈페이지 활성화의 한 방안으로 영화 티켓이 걸린 이벤트가 진행중인 것은 알지만 득점을 위한 포스팅이 아니란 걸, 쓸데없이, 언급해둡니다.
이 비평은 도서 [목적이 이끄는 삶]의 서론 부분에 대한 비평입니다.
책(한글판)을 열면 저자인 릭 워렌의 한국어판 권두언, 사랑의 교회 옥한음 목사,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목사,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 등의 추천사들이 이어지고 목차를 넘기면 서문이 나타난다.
각설하고, 서문의 내용 중 일부를 아래 푸른 박스에 인용하면서 바로 비평으로 들어간다. 번호는 원래 없는 것이지만 편의상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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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누군가를 그분의 목적을 위해 준비시킬 때마다 40일이 걸렸다. 1. 노아의 삶은 40일 동안 내린 비로 변화되었다. 앞으로의 40일이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다. |
1. 노아의 삶은 40일 동안 내린 비로 변화되었다.
노아는 비내리는 40일 동안 변화된 것이 아니다.
노아는 이미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자였고, 의인이었고, 당세에 완전한 자였으며, 하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창 6:8-9).
홍수 후에 새롭게 창조된 세계에서 아담과 하와가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과 잔치를 누리는 모습을 보면(9:20-21) 그가 홍수를 겪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새롭고 풍성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고 해야 하겠지만, 비내리는 40일이 노아의 변화를 위한 것이라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40일 전에는 노의 삶이 어떠했고 40일 후에는 노아의 삶이 어떻게 변했다는 말인가. 120년간 오직 말씀에 의지하여 마른 땅에서 배를 짓고 있었던 순종의 노아가 40일간 비가 내리기 전에는 노아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몰랐다는 것인가?
설명할 것도 없다. 비내리는 40일은 노아의 변화의 시간이 아니라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심판의 시간이다.
2.모세는 시내산에서 보낸 40일 동안 변화되었다.
모세가 산에 올라 40주야를 보낸 것은 두 번이다. 한 번은 첫번째 돌판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이고(출 24:12-18), 또 한 번은 두번째 돌판을 들고 올라 갔을 때이다(34:1, 28). 그렇다면 릭 워렌은 어느 40일에 모세가 변화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어느 40일이든 그 40일을 보내고 나서야 모세는 자기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었다는 말인가가? 40일 전의 모세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었으며 40일 후에 변화된 모세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이라는 말인가?
모세가 40일을 산 위에서 보낸 시간은 모세의 변화를 위한 시간이 아니다. 모세는 변화받기 위해 산에 올라 간 것이 아니라 산에 올라 내게 보이라는 말씀이나 올라와 내게 보이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올라간 것이다(출 24:12; 34:2). 모세의 변화를 이야기하려면 미디안에 보내야 했던 40년이나 그 끝무렵에 여호와께서 꺼지지 않는 불 가운데서 만나 그를 부르신 사건을 언급해야 정당할 것이다.
3. 정탐꾼들은 약속의 땅을 40일동안 바라보면서 변화되었다.
오호 통제라! 정탐꾼들이 약속의 땅에서 40일을 보내면서 변화되었다니!
민수기 13장과 14장을 읽어 보라. 정탐들은 40일간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하였고 그로 인해 백성은 원망과 두려움과 불신에 이르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2주나 한 달이면 갈 수 있는 가나안 여정이 40년으로 늘어난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이 정탐들이 가나안을 정탐한 40일의 매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간 광야를 돌면서 원망과 불신의 세대가 다 죽기까지 하나님께서 그 길을 늦추셨던 것이다.
어찌 이 정탐의 일을 두고 ‘40일간의 영적 여정을 위한 안내서’가 왜 40일을 의미심장하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는지 통탄할 일이다. 혹 모르겠다. 40일 여정을 잘못 보내면 이런 중대한 범죄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4. 다윗은 골리앗의 40일간의 도전으로 변화되었다.
계속 놀람을 금할 수 없다. 어쩌면 이렇게 담대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거지?
다윗의 세 형은 이미 전쟁 중에 있고 골리앗은 날마다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고 있었다. 그런 기간이 40일이었다. 그런 중에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전쟁터 엘라 골짜기까지를 왕래하면서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도 하고 베들레헴에서는 양도 치고 있었다.
사무엘상 17장을 읽어보라(40일 이야기는 16절에 나온다). 어떻게 무슨 근거로 다윗이 40일 동안을 골리앗의 도전을 받았으며 그 도전을 통해 다윗이 변화받았다고 하는가?
성경은 골리앗이 40일동안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것을 다윗이 알았다고 하지도 않는다. 40일의 마지막날 또는 40일 직후의 어느날,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도착한 다윗은 그제서야 골리앗의 조롱하는 말을 듣게 된다.
40일을 통한 변화를 말하기 전에 다윗이 만류하는 사울에게 자기의 과거를 고백하는 말을 들어 보라.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삼상 17:34-37a).
그리고 이 말씀도 읽으며 다윗이 40일간의 여정으로 통해 변화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당한지 생각해보라.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삼상 16:13)
화가 나서 더 이상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화나고 피곤해도 성실하게 끝까지 가야 하지만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이어지는 5., 6., 7., 8. 번의 내용도 모두 거짓말입니다. 릭 워렌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모두 사기란 말입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것으로 계속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또 머리 속으로만 대충 생각하는 것도 멈추고, 성경을 펴 놓고 5., 6., 7., 8. 번의 내용에 해당하는 본문을 찬찬히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상되는 질문과 그 외 몇 가지를 주절거리며 마쳐야 하겠습니다.
릭 워렌은 앞선 책 새들백교회 이야기(원제: 목적이 이끄는 교회)에서도 성경을 이리저리 비틀어 마음대로 끌어가더니 이 책에서도 변화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담대한 저자도 놀랍고 이런 책을 낸 릭 워렌이 목회하는 교회같은 교회가 되지 못해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책을 이렇게 저렇게 권하고 읽는 한국 교회도 놀랍습니다.
성경으로 대놓고 거짓말을 하는 이 릭 워렌은 불신자일까요? 책의 내용들을 살펴 보면 그를 불신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저자로든지 목회자로든지 여러 모로 인기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큰 교회와 작은 교회 사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교회를 부러워하게 만들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위험 인물인 것은 거의 틀림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비평의 연속성 상에서 말해 본다면, 그가 무책임한 신앙 서적 저자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함께 40일 여행을 시작하자고 촉구하면서 40일 여행의 중요성을 말하는 근거로 든 여덟 가지 예가 어떻게 하나같이 거짓말일 수 있는 겁니까? 그리고 이런 서문이 있는 책을 위해 기꺼이 추천사를 쓴 한국의 대표적인 유명 목사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완벽한 신앙 서적은 없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좋은 책이나, 좀 나은 책이나, 좀 못한 책이나 거의 쓸모 없는 책은 있겠지만 완벽한 신앙서적은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신앙 서적에 연연해 하지 마시라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많은 경우 성경은 읽지 않고, 그래서 성경으로부터는 도움을 얻지 못하고 소위 ‘좋은 신앙서적’으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찾아 다닙니다. 성경에서 위로를 얻지 못하는데 신앙서적으로부터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요? 또 얻을 수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바람직한 일일까요?
둘째는 성경을 펼쳐놓고 읽을 것을 권합니다. 문자적으로 신앙서적 바로 옆에 성경도 펴 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비춰 보아서 수납할 만한 내용/주장인가를 생각하면서 읽으시라는 겁니다. 그렇게 읽으시면서 아멘 할 부분은 아멘하고, 새삼스럽게 깨달은 부분은 감사하고, 성경과 맞지 않는 부분은 버리고, 그러면서 읽는 거지요.
(이 책 안에도 귀한 내용이 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불행하게도 서문에서는 취할 부분이 없었습니다. 서론이 없었더라면 책은 조금 더 좋아질 수 있을 뻔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땠습니까?